우리 모두는 각자가 위치한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며 문화적이고 지리적인 위상에서 공간을 경험한다. 이 위상은 모든 이에게 온전히 동일할 수 없다. 동일한 위상의 3차원 좌표 위에서 복수의 주체가 완전히 겹쳐져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각기 다른 위상에서 펼쳐지는 경험은 공간을 장소로 체험하도록 만든다. 장소 체험을 통해 공간은 각기 다른 장소로 분할된다. 물론 공간은 원론적으로 장소 체험들의 중첩들로 구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목격한 각각의 장소체험들은 ─ 그것이 공간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자신의 장소 영토 바깥을 벗어나지 않는다/못한다. 설령 인접한 위상과 유사한 성격의 공간조차도 더 이상 같은 공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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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간주의를 제안한다. 공간주의(空間注意)는 공간에 대한 하나의 단일한 주의(主意)를 주창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즉 각자의 장소 체험이 상이한 위상에서 구성된 것임을 드러내고 이를 종합함으로써 일관되지 않은 공간을 맥락화하는 것이다. 목적 달성의 성패는 상이한 도시 실재계와 도시 상상계의 영토들에서 분화된 공간의 조각들에 대한 ‘조각모음’의 실행 수준에 달려 있다. 그것은 개별 영토와 분과, 각기 다른 개별 스케일이라는 이질적 장소의 가두리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에 공간주의는 공간을 주의하고 전면화하는 이질적인 작업들이 만나는 경계 없는(border-less) 접경지대가 되고자 한다. 이 때 접경지대는 각기 다른 토대와 스케일에서 발전한 공간에 대한 작업들의 논쟁이 펼쳐지는 전장이자, 동시에 그 전장에서 합의된 공통 방향의 총체적인 공간 생산을 위한 공동진지를 의미한다. 공간주의의 접경지대는 거대한 스피커들에게 가려져 가두리 안에서만 메아리쳐졌던 작은 목소리들의 참여를 환영한다. 또한 우리의 접경지대가 공간의 (재)구성을 위한 전술과 실천의 매개 장치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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