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김영대 (2021). 물과 변으로 상상력을 수혈하기. 이승빈·김영대·신지연 (편), 〈잡종도시서울〉(pp. 31-64). 서울: 공간주의의 일부분입니다. 글의 전문 및 인용은 해당 서지정보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변기에 앉으면 우린 자연스럽게 변을 누고 일어나서 물도 내리고 손을 닦는데 그렇게 잠시 고개를 돌리고 나면 방금 변을 봤는지도 모르게 변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우리가 눈 변은 변기 속으로 들어가고 아마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인데 여전히 우리는 이 변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변을 눈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멀끔한 흰 도자기 변기에 담긴 그 변이 어떤 아주 합법적이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거나 행복한 어떤 방식으로 사라지거나 하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변을 누고 많이 누면 하루에 두 번씩도 누는데 일 년에 한두 번 정화조를 치운다. 변이 지하에 1년간 쌓이기만 한다면 건물마다 지하에는 아주 많은 변이 정화조에 수북이 쌓이고 그 변을 치우려면 아주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사람 몸으로 할 일이라곤 생각할 수 없고 보통은 분뇨흡입차가 와서 변을 빨아가고 아니면 지하의 펌프가 정화조에 담긴 똥을 하수관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뒤늦게 1972년에는 서대문구 성산동에 서부위생처리장이, 1976년 군자동에는 AID(Ac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차관을 동원해 청계천하수처리장이 준공된다. 그러나 8.5%인 수세식 화장실을 제외하면 대부분 화장실이 푸세식이어서 재래식 분뇨 수거방식에 의존하고 있었고 종로와 중구 등 수세화를 마친 도심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트럭과 지게를 사용해 분뇨를 수거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1973년 수거된 변 중 위생적으로 처리되는 양은 전체의 27% 밖에 안 됐고 나머지는 1975년까지도 분뇨탱크에 보관하다가 42%가 강물에 방출됐다. 수세식 변소가 빠르게 증가했지만 인구증가는 더 빨라서 수거분뇨량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인구가 너무 빠르게 늘면서 서울의 위생 인프라도 속수무책이었다. 서울시민은 인프라가 붕괴된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무턱대고 변을 보고 오염된 물을 마시고 악취를 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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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대

플랫폼 공간주의를 기획하고 개발했다. 기술 인터페이스와 생태계가 생산하는 정치와 경제, 상상력의 양식에 관심이 있다.